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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게시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 김춘수 관리자 2026.07.12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관리자 2026.07.12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 천상병 관리자 2026.07.12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관리자 2026.07.1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관리자 2026.07.12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으로
사람의 집들이 어두어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이별 노래 - 정호승 관리자 2026.07.12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
감시화천루(感時花濺淚)
한별조경심(恨別鳥驚心)
봉화연삼월(烽火連三月)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
백두소갱단(白頭搔更短)
혼욕불승잠(渾欲不勝簪)
 
나라가 파망하니(깨져도) 산과 강만 남아 있고/ 성 안에 찾아온 봄, 풀과 나무만이 무성하구나/ 시절을 느껴보니 꽃이 나의 눈물을 뿌리게 하고/ 이별하였음을 슬퍼하니 새가 나의 마음을 놀라게 하는구나/ 봉화가 연이어 삼개월 끊이지 않아/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보다 비싸구나/ 흰 머리를 긁으니 또 짧아지고/ (남은 머리를)다 모아도 비녀를 꽂지 못하겠네
춘망(春望) - 두보(杜甫) 관리자 2026.07.12
사랑이 가기 전에 이렇게 될줄 알면서도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주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잎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사랑이 가기전에 - 조병화 관리자 2026.07.12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 푸시긴 관리자 2026.07.12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관리자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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